숭양서원은 정몽주의 옛 집터인데 이조시대에 그 곳에 지방사립교육기관인 숭양서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1573년 건립되어
430년이 넘은 건축물입니다.
[출처] 가깝고도 먼 開城 - 숭양서원, 선죽교
========================================================================================================= 엘보라는 대명을 쓰시는 어느 네티즌께서 개성 관광을 다녀와서 찍은 사진을 공개하였더군요. 하루속히 해주도 개방이 되어서 우리해주최씨의 발상지이고, 문헌서원이 있는곳을 갈수있게 되기를 소원하며, 개성의 숭양서원의 사진을 올려보았습니다. 대체로 우리가 우려하였던 것보다는 잘 보전되고 있다는것을 느낄수가 있습니다.
현청수문장 배상
숭양서원 [崇陽書院]
개성시 선죽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 지정번호 북한국보 문화유물제128호 소재지 개성시 선죽동 시대 조선시대 분류 서원
본문 북한의 사적 제51호로 지정되었다가 국보 문화유물 제128호로 변경되었다. 선죽동 자남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1573년(선조 6) 개성유수 남응운(南應雲)이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고 서경덕(徐敬德)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개성 선죽교 위쪽 정몽주의 집터에 서원을 세우고 문충당(文忠堂)이라 하였다. 1575년(선조 8) ‘숭양(崇陽)’이라는 사액(賜額)이 내려 국가 공인한 서원으로 승격되었고, 1668년(현종 9) 이후 김상헌, 김육(金堉) ·조익(趙翼) ·우현보(禹玄寶) 등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경내에는 사당, 강당, 동·서재, 내·외삼문이 있다.
출입문인 외삼문은 5단의 높은 장대석 기단 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1칸의 민도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특이한 점은 정면과 후면의 주춧돌을 다르게 사용했는데 정면에는 장방형, 후면에는 원형으로 다듬어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기둥은 모두 원기둥을 사용하였다.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마당 안쪽에 강당이 있고 그 앞 양쪽에 동재와 서재가 마주 서 있다.
강당은 높은 기단 위에 세운 정면 5칸, 측면 3칸의 민도리계 팔작지붕집이다. 3칸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이 1칸씩 있는 구조이다. 앞쪽에 툇마루를 설치하고 내부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동재와 서재는 각각 정면 5칸, 측면 2칸의 민도리계 맞배지붕집이다. 내삼문으로 들어가면 문충당이라고 하는 사당이 있다. 사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민도리계 맞배지붕집이다. 2칸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1칸 온돌방이 있는 구조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서 제외된 47서원의 하나로 남아 선현을 봉사(奉祠)하고 지방교육을 담당하였다. 임진왜란 이전에 건축된 서원의 전형적인 배치 형식과 구조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다.